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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경제 기적의 숨은 주역 철강왕 박태준

by 순이하우스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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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지금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일까요? 삼성, 현대, LG 같은 대기업들의 약진도 있었고, 수출 주도형 산업구조의 변화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산업의 근간을 만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철강왕’ 박태준 회장입니다.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이 없던 시절, 아무것도 없던 폐허 속에서 그는 ‘철강 강국’을 만들겠다는 단 하나의 신념으로 포항제철을 세웠습니다. 이 한 사람의 결단과 실천이 없었다면, 오늘날 한국의 중화학 공업은 물론, 조선, 자동차, 기계 산업의 눈부신 발전도 불가능했을지 모릅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두 번의 비극을 겪으며, 한국은 모든 것이 무너져 있던 상태였습니다. 심지어 당시 미군 최고 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조차 "이 나라는 100년이 지나야 복구가 가능할 것"이라 말할 정도였죠.
그런 상황에서 철강을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박태준 회장은 이 불가능을 현실로 바꾼 인물입니다. 제철소 하나 없는 나라에서 세계적 철강기업을 세우기까지, 그는 단 하루도 현장을 떠나지 않으며 포항제철을 지휘했습니다. 하루에 두세 시간만 자고, 모래 섞인 밥을 먹으며 현장과 사무실을 오갔습니다.
그가 완성한 포항제철은 한국 경제의 근간이 되었고, 세계가 한국을 철강 강국으로 인정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정신은 지금도 POSCO에 고스란히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철강은 국가 산업의 근간입니다. 자동차, 조선, 건설, 기계 등 거의 모든 중화학 산업은 철강을 기반으로 합니다. 하지만 1960년대 한국은 철 한 조각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였습니다. 제철소 건설은 국가적 과제였지만 자본도 기술도 인력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태준 회장은 '철강은 국력'이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포항제철 건설을 추진합니다. 그에게 제철소는 나라의 미래였습니다.
초기 제철소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민간 주식 공모가 시도되었지만, 국민들은 생계에 쫓기느라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박 회장은 일본으로 눈을 돌립니다. 당시 한일 청구권 협상으로 들어온 일본의 배상금 중 일부를 제철소 건설에 쓰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원칙적으로 ‘농업용’에만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이었기 때문에, 이를 용도 변경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외교와 협상에서 타협과 집념으로 결국 이 자금을 철강 산업에 투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포항제철을 세운 박태준 회장은 “이 제철소는 선열의 피로 짓는 것”이라며 현장에서 모든 직원들과 함께 잠을 자고 식사를 하며 공사를 진두지휘했습니다. 현장은 비와 추위, 모래바람 속에서 진행됐고, 수많은 인부들이 연 581만 명이나 투입되었습니다. 공사를 포기해야 할 위기도 수없이 있었지만, “실패하면 모두 바다에 뛰어들겠다”는 각오로 완공까지 밀어붙였습니다.
1973년, 포항제철이 완공되자 한국 산업은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이전에는 외국에서 고가의 철강을 수입해 조선소를 짓고, 자동차를 만들고, 건물을 지어야 했지만 이제는 자체 생산이 가능해졌습니다. 철강 자립은 대한민국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불과 4년 만에 한국은 철강 생산 10대 국가로 도약하게 됩니다.
처음 103만 톤 생산 능력으로 시작한 포항제철은 이후 광양제철소까지 확장되며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박태준 회장은 철강 생산 및 품질 경쟁력과 기술력에서도 세계 1위를 만들기 위해 밤낮없이 경영 혁신을 시도했습니다. 현재의 POSCO는 글로벌 철강 시장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이며, ESG 경영과 친환경 제철 기술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은 ‘국가의 자립’이라는 대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철강 산업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포스코 임직원들에게는 늘 “우리가 만드는 철은 나라의 뼈대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철학이 있었기에 그는 자금, 인력, 기술이 모두 부족한 상태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포항제철을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철강 산업을 포기했다면, 오늘날의 한국 경제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철강산업이 없었다면 조선 산업의 부흥도, 자동차 산업의 수출도, 고층 건물과 인프라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박태준의 결단은 하나의 국가 경제를 완전히 바꿔놓은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당시 선진국들은 한국의 철강 산업 진출을 철저히 견제했습니다. 철은 고도의 기술과 설비가 필요한 산업으로, 후진국의 진입 자체를 막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박태준은 기술 국산화를 위해 국내 기술자들을 양성하고, 외국인 기술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경영 방식을 도입하여 ‘기술 독립’의 기틀을 세웠습니다.
박태준 회장의 직원들과 같은 조건에서 일하며 그들의 사기를 북돋았습니다. 직원들이 지치지 않도록 직접 격려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모습은 오늘날에도 이상적인 리더십의 본보기로 회자됩니다.
포스코는 현재 인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지에 해외 법인을 세우며 글로벌 철강시장에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습니다. 이는 박태준 회장의 글로벌 산업관을 계승한 결과입니다. 그는 일찍부터 “세계 속의 한국 철강”을 꿈꿨고, 이를 위해 국제 협력과 기술 교류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크고 작은 위기가 끊임없이 발생했습니다. 장비 부족, 기술자 이탈, 자연재해 등 여러 악재가 겹쳤지만 박태준 회장은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정확한 판단과 빠른 실행력으로 문제를 해결했으며, 이러한 냉철함은 포항제철 성공의 숨은 열쇠였습니다.
포스코는 국민기업으로써 박태준 회장의 철학에서 기인한 것이며, 수익을 국가에 환원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구조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포스코는 장학사업, 재난 복구, 지역사회 지원 등 다양한 방면에서 국민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으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박 회장의 리더십은 경영학 교과서에도 자주 등장할 만큼 모범적입니다. 현장 중심의 리더십, 문제 해결 중심의 실행력, 공동체와 국가를 위한 책임의식 등은 기업과 공공기관, 정치권에서도 본받아야 할 모델입니다.
박태준 회장은 생전에 철강은 물론 반도체, 기초과학 등 미래 산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철강과 같은 기반 산업 외에도 기술집약형 산업을 함께 육성해야 한다는 식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는 현재 한국 경제가 가야 할 방향성과도 일치합니다.
그가 남긴 '하면 된다'는 실천력, 국가를 위한 신념, 산업을 통한 자립의 길 등 수많은 무형의 유산이 오늘날에도 한국 사회 곳곳에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는 진정한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주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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