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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설화

by 블로그레이아웃 2025. 8. 4.

박규리 시인의 시 『치자꽃 설화』는 속세의 사랑을 떠나보내야 하는 스님의 고뇌와 그 사랑을 거절당한 여인의 슬픔을 통해 사랑과 이별, 존재의 외로움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치자꽃의 역설적 상징성과 자연 배경 속 감정 묘사가 뛰어나 독자로 하여금 깊은 감정의 이입과 자기 성찰을 이끌어내는 작품입니다.

 

치자꽃 설화

 

1. 사랑의 실현과 단절

치자꽃 설화(박규리)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 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는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치자꽃 설화
 

 

2. 존재의 비애를 담은 시적 성찰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꿈꾸며 때로는 그 사랑을 잃고 비로소 자신을 알게 됩니다. 박규리 시인의 <치자꽃 설화>는 사랑과 이별, 그 가운데 있는 인간 존재의 외로움을 조용하지만 깊고 섬세하게 펼쳐내는 작품입니다. 시는 장면 속에 깃든 복합적인 감정과 사연을 드러냅니다. 스님과 여인,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화자는 각각 다른 관점에서 사랑을 경험합니다. 시 속 인물들은 말이 없지만 그 침묵 속에 오히려 더 깊은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치자꽃 설화>는 겉보기에는 고요하고 정적인 시로 그 안에는 마치 거대한 산이 움직이듯 격렬한 감정이 움직입니다. 스님은 출가한 수행자이지만 속세와의 인연을 단절하는 일이 단지 물리적 거리만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여인은 스님을 사랑했지만 거절당하고 떠나갑니다. 화자는 그 장면을 목격하면서 사랑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사랑받지 못하는 일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깨닫습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시가 보여주는 감정의 전이입니다. 시가 끝날 무렵에는 여인의 슬픔을 화자 자신의 슬픔으로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시인의 탁월한 감정 이입 능력이며 독자로 하여금 시 속 인물과 감정적으로 교감하게 만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어느 순간 스님이 되었다가 여인이 되었다가 화자가 되는 다층적 감정의 여행을 하게 됩니다.

 

박규리 시인은 1955년 전남 영광 출생으로 1996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입니다. 전북 고창의 미소사에서 공양주로 지낸 경험이 있으며 그 체험을 바탕으로 한 시집 『이 환장할 봄날에』를 출간했습니다. 대표작 「치자꽃 설화」는 사랑과 이별, 존재의 고독을 불교적 공간 안에서 섬세하게 그려낸 시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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