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대표 고급 세단 '그랜저'는 포드 그라나다 CKD 조립의 실패에서 시작된 국산차 자존심의 상징입니다. 정주영 회장의 결단으로 추진된 L카 프로젝트를 통해 1986년 탄생한 그랜저는 미쓰비시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개발되었고 이후 대한민국 고급차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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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나다 프로젝트, 조립식 국산차의 한계에 부딪히다
1978년, 현대차는 포드와 협력하여 ‘포드 그라나다’를 국내에서 CKD 방식으로 생산하기 시작합니다. CKD 방식은 부품을 대부분 수입해 국내에서 조립만 하는 방식으로 당시 개발 초기 단계의 국내 자동차 산업에서는 매우 일반적인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국산화율이 문제였습니다. 국산 부품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그라나다는 정부의 자동차산업 육성 정책 기준에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따라 관세 면제 혜택을 받지 못했고 가격은 수입차 수준으로 치솟으며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이 프로젝트의 좌절은 현대차에게 큰 교훈을 주었고 ‘언젠가는 진짜 우리 손으로 고급차를 만들겠다’는 열망이 싹트게 됩니다.

정주영 회장의 결단, 국산 고급차 개발 선언
포드 그라나다 프로젝트의 실패 후 현대자동차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중대한 결정을 내립니다. 현대차의 관계자들을 모은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이제 남의 차 조립해서 팔아선 안 된다.
우리 손으로 고급차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
이 결심은 ‘외국 기술 의존’을 끊고 대한민국 자동차 산업을 자립시키겠다는 산업적 선언이었습니다. 이 선언에 따라 본격적인 국산 고급 세단 개발 프로젝트 즉 ‘L카 프로젝트’가 추진되기 시작합니다.
L카 프로젝트와 미쓰비시의 기술 협력
L카 프로젝트는 1982년 본격화되며 일본 미쓰비시와의 협력 하에 추진됩니다. 당시 현대차는 미쓰비시와 이미 기술제휴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미쓰비시의 ‘데보네어(Debonair)’ 플랫폼을 기반으로 삼아 프로젝트를 빠르게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이때 선택된 전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 엔진 및 플랫폼 : 미쓰비시 데보네어 기반
- 디자인 및 외형 설계 : 현대자동차 주도
- 생산 및 마케팅 : 국내 전용 고급 모델로 전략화
현대차가 기술적으로 미완성이었음을 인정하되 외부 기술을 바탕으로 빠르게 자체 모델을 생산하고, 점차 독립하는 전략이었습니다.
그랜저라는 이름에 담긴 의지
L카 프로젝트를 통해 완성된 이 신차는 1986년 7월, ‘그랜저(Grandeur)’라는 이름으로 출시됩니다. 이 이름은 영어 단어 Grandeur(위엄, 웅장함)에서 따온 것으로 차량이 지닌 품격과 고급스러움을 상징합니다.
명칭에서부터 현대차는 자존심과 품격을 담은 프리미엄 세단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고 당시 일본 고급차와 차별화되는 국산차 브랜드 정체성 확립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86년, 초대 그랜저의 출격
1986년 7월, 현대차는 마침내 자사의 첫 고급 세단 ‘그랜저’를 선보입니다. 당시 광고 문구는 ‘당신이 그랜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랜저가 당신을 선택합니다’였습니다.
이 광고는 차량의 고급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실제로 사회 지도층, 기업가, 정치인 등 고위 인사들이 이 차를 타기 시작하면서 ‘성공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 엔진 : 2.0 SOHC / 2.4 SOHC 가솔린
- 기능 : 파워 윈도우, 파워 스티어링, 자동 변속기, 고급 인테리어
- 플랫폼 : 미쓰비시 데보네어 기반
그랜저는 어떻게 ‘성공의 상징’이 되었나
1980~90년대 한국 사회는 자동차가 사회적 위상의 상징으로 자리잡던 시기였습니다. 그랜저는 당시 존재하던 어떤 국산차보다 크고 고급스러웠고 수입차는 지나치게 고가여서 일반 기업인이나 공직자가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결국 그랜저는 ‘현실적 고급차’로 소비자에게 인식되며, ‘그랜저를 타야 성공한 사람’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브랜드 가치를 확립하게 됩니다. 이 사회적 이미지가 2세대 그랜저까지 이어지며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 또한 크게 상승하게 됩니다.

그랜저의 출발은 분명 실패에서 비롯되었습니다만 그 실패를 회피하지 않고 기회로 삼은 정주영 회장의 결단과 현대차의 도전은 결국 오늘날 대한민국 대표 고급차 브랜드를 탄생시켰습니다.
국산 기술로도 세계적인 고급차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 사례이며 이후 제네시스 브랜드의 독립에도 중요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연도 | 사건 |
1978 | 포드 그라나다 CKD 도입 |
1982 | L카 프로젝트 착수 |
1986 | 초대 그랜저 출시 |
1992 | 2세대 뉴 그랜저 출시 |
1998 | XG (3세대) 출시 |
2005 | TG (4세대) 출시 |
2011 | HG (5세대) 출시 |
2016 | IG (6세대) 출시 |
2022 | GN7 (7세대) 출시 |
현대차의 L카 프로젝트는 1982년 자체 고급 세단 개발을 목표로 시작된 사업으로 일본 미쓰비시의 데보네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했습니다. 이를 통해 1986년 출시된 초대 그랜저는 비록 기술적으로 일부 외산 요소가 포함됐지만 디자인과 생산, 마케팅은 현대차가 주도한 정통 국산 고급차였습니다. 앞서 시도한 포드 그라나다의 CKD 조립 생산은 낮은 국산화율로 관세 혜택을 받지 못해 실패했고 이는 현대차가 자립형 개발로 방향을 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Grandeur'라는 이름은 웅장함과 위엄을 뜻하는 영어에서 따온 것으로 차의 품격을 상징하며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했습니다. 정주영 회장의 고급차 독자 개발 발언은 현대차 창립 회고록과 공식 자료에서 확인되며 초대 그랜저는 수입차가 아닌 완전 국산 생산 차량으로 당시 국내 시장에서 직접적인 경쟁 모델 없이 독보적인 입지를 다졌습니다. 현재 그랜저는 2022년 출시된 GN7까지 총 7세대에 걸쳐 진화하고 있습니다.